가난이 할퀸 상처 아물어 가는 줄 알았는데....

가난이 제 인생과 제 마음에 남긴 깊은 상처가 이젠 나이도 먹어가고 내 아이도 키우고 하면서
아물어 가는 줄 알았는데, 아이를 키우면 부모님 은혜를 깨닫게 된다던 옛말과는 달리
키우면 키울수록 분노과 상실감만 커져 가네요.
 
왜 나는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가난에 짓눌려 허덕이면서도 병신 같이 부모가 가르치는대로
그 상황에서도 부모님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을까...
 
도대체 얼마나 찌들리고 그 지독한 가난 외의 다른 세상을 감히 엿볼 환경 조차 안되었길래
남들은 어찌 사는지 감이랄것 조차 없어서 그 깊이를 알수 없는 구렁텅이에서조차
다들 이렇게 산다 원래 이런거다 이따위에 세뇌되어서 방치해놔도 다루기 편하고 부려먹기
편한 아이로 키워진걸까...하고요.
 
어제 신랑이 아침으로 미숫가루 선식 먹을때면 우유에 꿀을 타서 줬었는데 마침 우유가
떨어지는 바람에 그냥 물로 탔더니 너무너무 맛이없더라구요. 신랑도 비려서 못먹겠다
하고 조금 먹고는 버리라고 식탁위에 뒀는데 그걸 버리기 아까워 조금 먹다가 눈물이
펑펑 났습니다.
 
어렸을때 콩깻묵에다가 도저히 상품 가치가 없어서 소여물이나 개밥으로나 쓰려고
버려둔 이런 저런 곡물 낟알 주워다가 방앗간에 가져다 주면 아주머니가 불쌍해서
한홉 조금 넘을까 말까한것들도 뭔가 작은 기계로 갈아줬었거든요.
그걸 물에 개어서 먹을때 엄청나게 비렸는데 그거 아니면 먹을게 없어서 마셨어요
도저히 비려서 못먹겠다 싶을땐 물을 조금만 넣고 설탕 얻어다가 좀 섞어 넣고
찰흙 뭉치듯 둥그렇게 뭉쳐서 한끼에 두입씩만 떼어 먹고 저녁 때쯤에 보면 파리가
들러붙어 있는데도 어떻게듯 겉에만 한번 물로 헹궈내고 또 뜯어먹고 그랬었던
기억이 나서...갑자기 미치겠는거에요.
 
요즘 들어 문득문득 근 30년도 훨씬 넘은 옛날 일이 이렇게 떠오르곤 합니다.
가난이 내게 남긴 상처가 너무 커서....
 
어떻게든 이 지옥을 탈출하기 위해선 난 공부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이악물고
남들의 인생 황금기랄 10대,20대를 오로지 김치와 단무지, 쌀밥, 라면 국물 얼려서
몇끼씩 소분 해둔거만 먹고 공부 또 공부해서 손에 꼽는 명문대 나오고 돈도 왠만치
벌어서 결혼도 했는데....
 
매일 사람 패는 소리에 곡소리만 나던 친정하곤 이제 발걸음도 거의 안하는데
왜 이리 자꾸 잊은줄 알았던 상처가 벌어지는지....
갑갑해요